D램 3개중 2개 `메이드 인 코리아`…시스템반도체는 개척분야
"반도체ㆍ디스플레이 등 첨단 기술 분야는 흡사 당구와 같다. 당구는 4구에서 아무리 빨리 점수를 내도 `쓰리쿠션`에서 점수를 따지 못하면 결국 후발주자에게 따라 잡힌다."
우리나라 수출의 핵심적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업계에 종사하는 한 엔지니어의 얘기다. 이 분야는 기술 선도 수준과 매출 발생이 정비례한다. 기술력이 우위에 있으면 시장을 리드할 수 있다. 반면, 그 기술은 발전을 거듭할수록 한계에 도달한다. 한계점에 가까울수록 차별화가 힘들다. 후발업체들 추격도 거세다. 기술 한계점에서 머무는 기간이 길다면, 후발주자들 추격은 언제든 가능하다. 중국ㆍ대만을 중심으로 반도체ㆍ디스플레이 후발주자들의 추격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품목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내년 국내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산업은 전반적으로 현재 위치에서 강한 도전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적 우위뿐만 아니라 응용ㆍ복합 분야에서 남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않으면, 언제든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지금까지 메모리와 비메모리 일부 품목을 중심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뒀다. 특히 메모리 산업은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이제 세계 1위를 넘어서 독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업체들 D램 점유율은 65%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D램 제품 3개 중 2개는 `메이든 인 코리아`다. 또 다른 주력 제품 낸드플래시도 마찬가지다. D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긴 하지만, 국내 업체들 점유율은 50%를 넘어섰다.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 산업도 내년 하나의 전환점을 맞게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올해 초로 예정된 미국 마이크론과 엘피다의 합병은 중요한 이슈다. 최근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마이크론의 엘피다 인수를 승인했다. 사실상 인수ㆍ합병 절차가 마무리 된 셈이다. 마이크론은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엘피다는 모바일D램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합병 시너지에 대해 국내 업계는 갖가지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모바일 분야서 강한 양사가 합쳐지면, 독보적인 위치였던 국내 업체들에게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
내년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에서 건설 중인 낸드플래시 공장 건설도 큰 변수다. 이 공장은 10나노대 첨단 공정으로 완공된다. 이를 승인한 정부나 추진하는 삼성 측은 기술 유출에 대한 위협 요소가 전혀 없다고 강조하지만, 의도치 않은 사건이 발생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메모리 산업은 20나노대 공정으로 접어들면서 기술적 차별성이 거의 사라졌다. 국내 업체들은 기술만이 아닌 각종 솔루션, 새로운 융복합 제품을 통해 차별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삼성, LG 중심의 디스플레이 산업 또한 내년 거센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업체들은 LCD(액정표시장치), 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등에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국내 업체들을 뒤쫓고 있지만, 현재까지 국내 업체들과 3∼5년까지 기술 격차가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BOE, 차이나스타(CSOT) 등 중국 업체들은 지방 정부 힘을 등에 업고 AMOLED 패널 양산 관련 투자를 구체화하고 장비를 발주하고 있다. 기술 확보를 위한 국내 전문 인력 스카웃도 알게 모르게 진행 중이다.
중국ㆍ대만이 거센 추격 중이라고 표현한다면, 일본은 이전 명예 회복을 노리고 있다. 샤프는 미국 퀄컴과의 협력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 공적 자금 투입도 검토되고 있다. 반면, 삼성, LG는 OLED 분야에서 LCD까지 특허 전쟁을 확대하면서 소모성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후발 업체들과 격차를 확대하기 위해선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대형 OLED 패널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 수준을 지금보다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메모리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이 전반적으로 도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시스템반도체는 우리가 새롭게 개척해야 할 분야다. 이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CMOS 이미지센서(CIS) 등은 국내 업체들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뒀다. 그럼에도 불구, 국내 시스템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은 이제 겨우 5%를 넘어섰다. 미국, 일본, 대만 등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수많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중에서 국내 업체들이 내세울만한 제품군은 손에 뽑을 정도다. 현대차그룹이란 완성차 업체가 있지만, 차량용 반도체는 95% 이상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유ㆍ무선 통신칩, 전력용 반도체 등 성장 가능성 높은 분야도 대부분 수입이다.
반도체 분야에서 예상치 못한 중국 추격도 거세다. 중국은 최근 연구 단계에서 22나노미터 하이케이 메탈 게이트 공정을 개발했다. 물론 양산단계가 아닌, 연구기관에서의 개발 수준이지만, 국내와 기술 격차가 크지 않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장비, 부품 소재 등 반도체ㆍ디스플레이 후방업체들의 경쟁력 강화와 시장 다변화도 점점 필요한 시점이다. 디스플레이 장비 국산화 비율을 상당 수준 올렸다는 평가지만, 국내 시장 공략에 거의 그치고 있다. 반도체 장비의 경우 지난 몇 년간 장비 국산화 비율은 20%대에서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 분야는 정치권이 주장하는 동반성장과 맞닿아 있을뿐더러, 반도체설계(팹리스) 기업 육성과 함께 중소ㆍ강소 기업 육성을 위해 가장 적합한 품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디지털타임즈
강승태 기자 kangst@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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