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PCB 장비 업체 태성은 요즘 눈코 뜰 새가 없다. 장비를 구매하겠다는 주문이 몰려들고 있어서다. 김종학 태성 대표는 “올해 4월 말까지 45개 라인을 출하했다”면서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성과”라고 말했다.
태성은 정면기와 습식장비(WET)를 만든다. 정면기는 PCB 소재인 얇은 동판의 표면을 정밀하게 연마하는 장비다. 습식장비는 △현상(Develop) △부식(Etching) △박리(Strip) 공정을 일괄 처리한다. PCB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전(前)공정'을 담당하는 장비들이다.
태성이 최근 바쁜 나날을 보내는 건 전방 산업인 PCB 업계가 애플 발 호재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올 가을 내놓을 신형 아이폰에 유기발광다이오드176(OLED)를 채택하면서 OLED에 필요한 PCB 수요가 대량 발생했다. 국내 PCB 기업들이 이 물량을 전량 수주했는데, 규모가 상당하다보니 공장을 증설해야 했고 증설에 필요한 설비 주문이 태성에 쏠리고 있다. 태성의 지난해 매출액은 200억원이었다. 올해는 450억원을 내다볼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 상반기 확정된 매출이 200억원을 넘었다.
김 대표는 “OLED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PCB가 RFPCB(경연성회로기판)인데, 제조가 매우 까다로운 제품”이라며 “우리나라 PCB 기업들이 기술력에서 앞서 있다 보니 그 수혜가 태성으로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경쟁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태성은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다. 하지만 PCB 장비 업계에선 인정받는 강소 기업이다. 태성은 일본과 독일 제품이 장악하고 있던 국내 시장에서 정면기와 습식장비를 국산화했다.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성능에서 앞서 수입 장비들을 대체했다. 그 결과 국내 정면기 시장에서 90%를 점유하고, 습식장비 분야에서는 40%를 차지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전기, LG이노텍, 영풍전자, 인터플렉스 등 국내 대부분 PCB 제조사들이 태성 고객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대만 폭스콘, 중국 쩐딩(ZDT), 일본 이비덴, 독일 슈바이처일렉트로닉 등도 태성 장비를 쓰고 있다. PCB 장비 종주국인 일본과 독일에 장비를 역수출하는 기록을 썼다. 김 대표는 “성능에 있어서만큼은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다고”고 자신했다.
순탄한 길은 아니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성과였다. 김 대표는 졸업 후 기계설계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1990년 고향인 청주에서 자동화 장비 사업에 나섰다. 하지만 두 차례나 사업에 실패했다. 공장과 집 모두 잃고 남은 돈이 20만원이었다. 이 돈을 들고 찾은 곳이 바로 안산이다. 당시 안산에는 가전용 PCB를 만드는 기업들이 많았는데, 수입 장비를 고가에 쓰고 있었다. 김 대표는 이를 국산화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매일 2시간씩 자며 개발에 매달렸다. 그렇게 나온 장비가 지금의 태성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해외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매월 20일 정도를 중국에 머물 정도로 중국 사업에 힘을 쏟는 중이다. 그는 “세계 PCB 생산량의 약 80%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면서 “2014년 중국에 생산 기지를 만들었는데,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PCB 메이커는 물론 중국 현지 PCB 업체들을 동시 공략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